성경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의 헌신

성경탐구, 구원의 역사, bible153 2025. 3. 30. 21:45

신약성경에는 초대교회 시대 헌신적으로 사역한 부부가 반복해 언급된다. 바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다. 이들은 바울 사도의 동역자였고, 생명을 걸고 복음을 위해 헌신한 인물로 기록된다.


로마식 이름에서 추정되는 사회적 배경

사도행전 18장에 따르면 브리스길라는 남편 아굴라와 함께 로마에 거주하다, 글라우디우스 황제의 유대인 추방령으로 고린도로 이주했다. 이들은 고린도에서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고, 그곳에서 사도 바울을 만나 동역자로 연결됐다.

 

브리스길라라는 이름은 '프리스카(Prisca)'라는 라틴어 이름의 애칭형으로, 고대 로마 귀족 여성들 사이에서 사용된 기록이 존재한다. 이를 근거로 브리스길라가 로마 시민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며, 귀족 계층 출신이었을 가능성도 학계에서 추정된다. 유대인인 아굴라와 결혼한 점은, 브리스길라가 유대교로 개종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정황으로 해석된다.


바울을 만나 예수님을 영접한 브리스길라

브리스길라가 언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는지는 성경이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사도행전 18장에서 바울을 만났을 당시 이 부부는 이미 신실한 동역자로 묘사된다. 이 점에서 브리스길라가 바울과의 만남 이전부터 예수님을 믿고 있었을 가능성도 열려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바울을 통해 복음을 듣고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이 경우, 브리스길라는 유대교 개종 이후 다시 한 번 신앙의 결단을 내린 셈이 된다.


아볼로 교육 장면에서 드러난 지적 역량

사도행전 18장 26절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알렉산드리아 출신 학자 아볼로를 교육한 장면을 전한다. 아볼로는 구약 성경에 능통했지만 성령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성경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히 풀어 이르더라”고 기록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남편보다 먼저 언급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당시 문화적 관습을 고려할 때, 브리스길라가 교육 장면에서 더 주도적인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해석이 맞다면, 브리스길라는 아볼로에게 성경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의 세상 교육을 받았던 사람으로 추정된다. 


이름 순서에 나타난 사역의 주도성

바울은 로마서 16장에서 이 부부를 “브리스가와 아굴라”라고 부른다. 여성의 이름이 먼저 언급된 사례는 신약성경에서도 드물다. 이를 근거로, 일부 학자들은 브리스길라가 사역 면에서 더 두드러진 역할을 수행했을 가능성을 지적한다. 또한, 바울은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다”고 표현했다(롬 16:4). 구체적인 사건은 밝혀지지 않지만, 이 부부가 바울을 위해 실제적인 위험을 감수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교회를 위한 헌신과 지속적 동역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복수의 도시에서 자신들의 집을 교회로 제공하며 가정교회를 섬겼다. 로마서 16장, 고린도전서 16장, 디모데후서 4장 등에서는 이 부부가 고린도, 에베소, 로마를 오가며 바울의 사역을 지원한 흔적이 확인된다.

 

특히 디모데후서 4장 19절은 바울이 순교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문안 인사를 전하는 장면인데, 그 대상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포함되어 있다. 이는 이들이 복음 전파의 초창기부터 말년까지 지속적으로 동역한 인물이었음을 시사한다.


성령이 충만했던 여성 신앙인

브리스길라의 삶은 단순한 인간적 열정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로마 시민이자 귀족 출신으로 추정되는 그녀가 민족적, 종교적 경계를 넘어 유대인과 결혼하고, 생업과 복음을 함께 감당하며, 박해의 위험 속에서도 교회를 세우는 일에 헌신한 삶은 성령의 역사 없이는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브리스길라는 당대 사회에서 보기 드문 여성 지도자로서, 지성과 신앙, 순종과 헌신을 두루 갖춘 인물로 기억된다. 오늘날에도 그녀의 삶은 신앙인에게 깊은 통찰과 도전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