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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아산, 오르난 타작마당, 솔로몬 성전이 가리키는 한 길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용하신 장소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모리아산은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했던 곳, 다윗이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제단을 쌓은 곳, 솔로몬이 성전을 세운 곳이 모두 이 모리아산과 연결된다. 성경의 흐름 속에서 이곳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죄를 속하는 제단, 하나님의 임재, 그리고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열린 구속사의 표지로 나타난다. 성경은 예배의 중심이 어떻게 이동해 왔는지를 보여준다.1. ‘여호와 이레’ 모리아산모리아산의 첫 장면은 창세기 22장에 나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신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이 지시하신 산으로 올라간다. 인간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지만,..

성경 2026.05.28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욥기에 대한 오해

성도들이 즐겨 외우며 의지하는 말씀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 이 구절은 개업식, 창업 축하, 졸업 축하, 새 출발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자주 사용된다. 지금은 작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하나님을 믿고 잘 견디면 결국 크게 성공하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구절은 하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 아니다. 욥의 친구 빌닷이 고난 중에 있는 욥에게 한 말이다. 문장만 보면 아름답고 희망적인 말씀처럼 들린다. 그러나 욥기의 문맥 속에서 보면, 이 말은 위로라기보다 욥의 고난을 잘못 해석한 친구의 말에 가깝다.1. 친구 빌닷의 인과응보식 신앙관욥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다. 재산을 잃었고, 자녀들을 잃었으며, 자신의 몸까지 병들었..

성경 2026.05.28

아합의 짧은 겸비, 므낫세의 늦은 회심에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

아합과 므낫세는 각각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서 대표적인 악한 왕이다. 아합은 북이스라엘을 바알 숭배의 깊은 죄악으로 이끌었고,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는 남유다를 우상숭배와 피 흘림의 죄로 물들였다. 이들의 죄악은 두 왕국의 영적 타락과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성경에 기록돼 있다. 그런데 열왕기상과 역대하에는 뜻밖의 장면도 기록돼 있다. 열왕기상은 아합 왕의 짧은 겸비를, 역대하는 므낫세의 늦은 회심을 기록한다. 놀랍게도 성경은 이토록 악했던 왕들이 잠시나마 하나님 앞에서 낮아졌던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기록해 두었다.1. 아합 왕의 짧은 겸비의 순간아합은 그의 아내 이세벨과 함께 바알 숭배를 북이스라엘에 확산시켰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박해했다.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는 일에도 깊이 관여했다. ..

성경 2026.05.11

사마리아 봉쇄와 예루살렘 봉쇄, 닮은 듯 다른 하나님의 구원

열왕기하에는 서로 닮아 있는 두 장면이 나온다. 하나는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가 아람 군대에게 봉쇄당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남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이 앗수르 군대에게 포위당한 사건이다. 두 사건 모두 인간적으로는 빠져나갈 길이 없어 보이는 절망적 상황이었다. 성읍은 적군에게 둘러싸였고, 왕과 백성은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두 사건 모두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으로 해결된다. 아람 군대는 큰 군대가 몰려오는 소리를 듣고 모든 물건을 남겨둔 채 도망쳤고, 앗수르 군대는 하룻밤 사이에 여호와의 사자에 의해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그런데 두 성읍은 기적적으로 구원받았음에도 결국 멸망의 길을 피하지 못했다. 사마리아는 훗날 앗수르에 무너졌고,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의해 불탔다. 하나님의 기적이 무색할..

성경 2026.05.07

벧엘 제단을 심판하러 갔던 하나님의 사람이 무너진 이유

우리는 죄가 언제나 악하고 흉한 모습으로 다가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죄는 때로 좋은 말처럼 오기도 한다. 사랑과 배려처럼 오기도 한다.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오기도 한다.명백한 죄는 오히려 알아보기 쉽다. 그러나 선처럼 보이는 거짓은 분별하기 어렵다. 겉으로는 신앙적이고, 말은 부드럽고, 명분은 좋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열왕기상 13장의 하나님의 사람이 바로 그 위험을 보여준다. 그는 여로보암의 벧엘 제단을 심판하기 위해 보내졌고, 왕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무너뜨린 것은 왕의 협박도, 재물도, 명예도 아니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나도 선지자다”라는 거짓 유혹이었다. 그는 그 말 앞에서 긴장의 끈을 놓고 말았다.1. 왕의..

성경 2026.04.26

신앙의 이름으로 포장된 분노…사사기 다시 읽기

교회나 신앙 공동체 안에서는 종종 집단적 결의에 찬 결정을 할 때가 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고 믿고 행동에 나선다. 로마서 8장 말씀을 근거로, 믿고 행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며 주문처럼 되뇌며 확신을 강화하는 모습도 적지 않다. 이 과정에서 사람의 감정과 조직의 필요, 지도자의 판단이 뒤섞이지만, 그것은 쉽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된다. 말씀보다 분위기에 먼저 반응하고, 분별하기보다 따르는 것을 신앙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의심하지 않는 것이 믿음이라고 배워온 사람일수록 질문을 멈추고 집단 속으로 들어간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죽은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어떤 분노는 ‘거룩한 분노’로까지 평가된다. 그러나 모든 분노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아..

성경 2026.03.24

축복은 했지만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을 사주한 발람

민수기를 읽다 보면 많은 교인들이 발람을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다 하나님이 막으셔서 축복만 한 점술가’ 정도로 기억한다. 그러나 성경을 꼼꼼히 묵상해 보면 결론은 전혀 다르다. 발람은 저주에는 실패했지만 돈 욕심 때문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길을 알려줬다. 오랜 광야 생활에 지쳐 있었고 화려한 이방 문화를 마주하게 될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있던 이스라엘 남성들에게 이 방법은 매우 강력하게 작용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발람의 이야기에 긴 분량을 할애하셨고 신약에서도 세 번이나 다시 언급할 만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 데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사건으로 기록하셨다.발람은 누구이며 왜 발락이 찾았나발람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다. 민수기 22장 5절을 보면 그는 메소포타미..

성경 2026.02.16

히브리 원문 ‘광야에서’는 왜 ‘민수기’가 되었을까

민수기는 종종 숫자만 가득한 책으로 여겨진다. 인구조사와 지파 명단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브리 성경 원문의 제목은 ‘광야에서’(Bemidbar)다. 제목이 달라지면 내용의 초점도 달라진다. ‘광야에서’는 메시지 중심 제목이다. ‘민수기’는 형식 중심 제목이다. 광야에서가 왜 민수기가 되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놓치기 쉬운 민수기의 메시지는 무엇인지 알아보자.광야에서가 민수기가 된 번역의 역사히브리 성경은 책 제목을 보통 첫 문장의 첫 단어나 핵심 표현에서 가져온다. 민수기 1장 1절은 '시내 광야에서'로 시작한다. 그래서 히브리 성경의 제목은 ‘광야에서’다. 그러나 헬라어 번역 과정에서 시선이 달라졌다. 번역자들은 민수기 안에 두 번 등장하는 인구조사에 주목했다. 그래서 책 이름을 숫자..

성경 2026.02.07

바벨론 포로 70년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안식년 불순종

레위기 25장은 안식년과 희년에 대한 규례를 비교적 상세히 기록한다. 안식년은 일곱 해마다 땅을 쉬게 하는 제도다. 희년은 일곱 번의 안식년이 지난 뒤, 오십 년째 해에 선포된다. 희년에는 토지를 원주인에게 돌려주고, 종을 해방하며, 채무와 종속 관계를 해소한다. 개인의 신앙 차원을 넘어 공동체 전체를 다시 세우라는 명령이다.(레위기 25:10)“이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온 땅에 거주하는 모든 자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것이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이 규례의 핵심에는 분명한 소유권 선언이 있다. 땅은 인간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점이다.(레위기 25:23)“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

성경 2026.02.03

아비의 죄를 왜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해석의 오해

출애굽기 34장 6~7절에는 하나님에 대한 매우 중요한 자기선언이 담겨 있다.“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출 34:6~7) 이 말씀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자식들이 무슨 죄라고 하나님이 왜 아비의 죄를, 그것도 자손 삼사 대까지 물으시는가 하는 점이다. 마치 연좌제처럼 느껴진다. 더욱이 이 표현은 출애굽기만의 것이 아니라 모세오경 곳곳에서 반복된다.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성경 2026.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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