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사마리아 봉쇄와 예루살렘 봉쇄, 닮은 듯 다른 하나님의 구원

성경탐구, 구원의 역사, bible153 2026. 5. 7. 21:28

열왕기하에는 서로 닮아 있는 두 장면이 나온다. 하나는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가 아람 군대에게 봉쇄당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남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이 앗수르 군대에게 포위당한 사건이다.

 

두 사건 모두 인간적으로는 빠져나갈 길이 없어 보이는 절망적 상황이었다. 성읍은 적군에게 둘러싸였고, 왕과 백성은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두 사건 모두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으로 해결된다. 아람 군대는 큰 군대가 몰려오는 소리를 듣고 모든 물건을 남겨둔 채 도망쳤고, 앗수르 군대는 하룻밤 사이에 여호와의 사자에 의해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그런데 두 성읍은 기적적으로 구원받았음에도 결국 멸망의 길을 피하지 못했다. 사마리아는 훗날 앗수르에 무너졌고,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의해 불탔다. 하나님의 기적이 무색할 만큼 결과는 허망해 보인다.

1. 사마리아 봉쇄와 절망의 시간

사마리아 봉쇄 사건은 열왕기하 6장 24절부터 7장 20절에 기록되어 있다. 아람 왕 벤하닷이 군대를 모아 사마리아를 에워쌌고, 봉쇄가 길어지자 성 안에는 극심한 기근이 닥쳤다. 나귀 머리와 비둘기 똥이 비싼 값에 팔릴 정도였고, 자기 아이를 삶아 먹는 비극까지 벌어졌다. 신명기에서 경고된 저주의 현실이 실제 역사 속에 나타난 장면이었다.

 

북이스라엘 왕은 굵은 베를 입고 있었지만, 엘리사를 원망했다. 그는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 그의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라며 분노를 선지자에게 돌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 놀라운 말씀을 주셨다.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가 한 세겔에 팔리고 보리 두 스아가 한 세겔에 팔리리라.”(왕하 7:1)

 

당시 상황에서는 믿기 어려운 약속이었다. 왕을 보좌하던 한 장관도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라며 의심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람 군대에게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다. 아람 군대는 주변국 군대가 자신들을 치러 온다고 착각했고, 결국 장막과 말과 나귀와 물품을 그대로 버려둔 채 도망쳤다.

2. 예루살렘 봉쇄와 신앙의 조롱

예루살렘 봉쇄 사건은 열왕기하 18장과 19장에 기록되어 있다. 당시 남유다의 왕은 히스기야였다. 그는 산당을 제거하고 우상을 깨뜨리며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한 신실한 왕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유다는 큰 위기를 맞았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를 침공했기 때문이다. 이미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고, 남유다의 여러 견고한 성읍들도 점령당했다. 이제 남은 핵심은 예루살렘이었다.

 

앗수르의 랍사게는 예루살렘 성 앞에서 히스기야와 백성을 조롱했다. 그는 애굽을 의지해도 소용없고,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도 헛되다고 말했다.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 산헤립의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펴 놓고 기도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응답하셨다. 그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 진영을 쳤고, 18만 5천 명이 죽임을 당했다. 산헤립은 니느웨로 돌아갔고, 훗날 자기 아들들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3. 닮은 듯 다른 두 사건

사마리아 봉쇄와 예루살렘 봉쇄는 여러 면에서 닮아 있다. 먼저 두 사건 모두 수도가 포위된 국가적 위기였다.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중심이었고, 예루살렘은 남유다의 중심이었다. 수도의 포위는 곧 국가 존망의 위기였다.

 

두 사건 모두 선지자의 말씀이 있었다. 사마리아에는 엘리사가 있었고, 예루살렘에는 이사야가 있었다. 하나님은 위기의 순간에도 자기 말씀을 통해 역사를 해석하게 하셨다. 무엇보다 두 사건 모두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으로 해결됐다. 사마리아에서는 아람 군대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고 도망갔고, 예루살렘에서는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 군대를 쳤다.

 

사마리아 사건에서는 왕과 백성의 회개보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긍휼이 두드러진다. 반면 예루살렘 사건에서는 히스기야의 기도와 하나님의 언약적 보호가 두드러진다. 사마리아는 굶주림 속에서 구원받았고, 예루살렘은 제국의 조롱 속에서 구원받았다.

4. 기적 후에도 돌아오지 않은 사마리아

사마리아는 아람의 봉쇄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러나 그 구원이 북이스라엘의 영적 회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북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 금송아지 숭배와 우상숭배는 지속되었고, 왕조의 불안정과 정치적 폭력도 반복되었다.

 

하나님은 여러 선지자를 보내셨지만, 백성은 말씀을 듣지 않았다. 결국 사마리아는 주전 722년 앗수르에게 함락되었고, 많은 백성이 포로로 끌려갔다. 열왕기하 17장은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단순한 군사적 패배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으며, 하나님의 언약과 율례를 떠났기 때문에 심판을 받았다고 말한다.

5. 예루살렘도 끝내 불타다

예루살렘은 히스기야 시대에 앗수르의 손에서 기적적으로 구원받았다. 그러나 남유다 역시 그 은혜를 끝까지 붙들지 못했다. 히스기야 이후 므낫세가 왕이 되었다. 므낫세는 유다 역사에서 가장 악한 왕 중 하나로 평가된다. 그는 우상숭배를 부추기고, 성전에 우상의 제단을 세웠으며, 무죄한 피를 많이 흘렸다. 히스기야 시대의 개혁과 구원의 기억은 다음 세대에서 희미해졌다.

 

훗날 요시야가 개혁을 일으켰지만, 유다의 죄는 너무 깊었다. 결국 남유다는 바벨론의 침공을 받았다. 예루살렘은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함락되었고, 성전은 불탔으며, 왕과 백성은 포로로 끌려갔다. 한때 앗수르 앞에서 기적적으로 보호받았던 예루살렘도 하나님을 떠났을 때 심판을 피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