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시계를 보고 산다. 언제 아침이고, 점심이고, 퇴근이고, 또 주말인지 안다. 시간은 이렇게 흘러가고, 우리는 그 안에 갇힌 듯 살아간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시간에 대한 또 다른 시선을 던진다.
성경이 말하는 시간에는 두 가지 개념이 있다. 흐르는 시간 크로노스(χρόνος), 그리고 하나님이 정하신 카이로스(καιρός). 전자는 인간의 시간이고, 후자는 하나님의 시간이다.
전도서는 이렇게 말한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다.” (전도서 3:1) 우리는 모두 그 ‘때’를 따라 살고 있다.
📌 회전목마 안의 시간 – 인간이 사는 크로노스
어느 유원지에서 아이가 회전목마를 타고 있다. 커다란 원판이 돌고, 목마는 위아래로 움직이며 아이를 실어 나른다. 음악이 흐르고, 불빛이 반짝이고, 아이는 웃는다. 하지만 회전목마는 그저 돌고 있을 뿐이다. 한 바퀴, 두 바퀴… 바깥 풍경은 계속 바뀌는 듯하지만, 실은 같은 원을 반복하고 있다.
우리의 인생도 회전목마와 닮아 있다. 어릴 땐 공부, 그 다음은 취업, 결혼, 자녀, 일터, 노년. 도는 일이 끝없이 이어진다. 무언가 열심히 산 것 같은데, 문득 멈춰서 보면 처음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전도서는 이렇게 말한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하리니,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도다.” (전도서 1:9) 크로노스는 그렇게 흘러간다. 변화를 약속하지 않는다.
📌 회전목마 밖의 시간 – 하나님이 일하시는 카이로스
아이의 눈에는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가지만, 회전목마 바깥에서 바라보는 엄마는 움직이지 않는다. 엄마는 한 자리에 서서, 목마를 타고 도는 아이를 향해 손을 흔든다. 아이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환한 미소를 짓는다. 아이도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손을 흔든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면, 엄마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엄마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엄마는 계속 그 자리에 있다. 단지 아이가 못 본 것뿐이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은 그런 방식이다. 우리는 바쁘게 살고, 돌고 돌며 살지만, 하나님은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우리를 바라보신다.
그리고 때가 되면, 하나님은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오신다. 마치, 아이가 회전목마를 타다가 어디 아프거나, 불편함을 느낄 때, 엄마는 회전목마를 잠시 멈추고 아이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과 같다. 이때가 하나님의 시간, 카이로스다.
📌 회전 목마는 왜 돌까? - 인간의 창조 목적
그럼, 엄마는 왜 아이를 회전목마에 태우는 걸까? 엄마는 아이가 즐겁게 놀기를 바라며 회전목마를 태운다. 조금 무서울 수도 있지만, 울음을 터뜨릴 수도 있지만, 돌다 보면 아이는 웃는다. 손을 흔들고, 엄마를 찾고, 자신을 표현한다. 회전은 경험의 무대요, 관계의 공간이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단순히 존재하게 하심이 아니라, 감사하고, 찬양하고, 교제하게 하려 하심이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사야 43:21)
회전목마는 놀이가 아니라 사랑을 배우는 장치다. 시간은 시험이 아니라 교제를 위한 무대다. 하지만 우리가 그 회전목마를 타는 목적을 잃어버리는 순간, 무의미하게 돌고 있는 것처럼 느낄 때가 많다.
📌 그리스도의 십자가 - 귀가를 알리는 카이로스
회전목마는 언젠가 재미없어진다. 아이는 자란다. 처음에는 즐겁게 탔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제 그만할래”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또는, 집에 가야 할 시간인데도 아이는 말한다. “조금만 더 타고 싶어요.” 그때 엄마는 말한다. “그래. 그럼 딱 10분만 더 타고 가자.”
그 순간은 단순한 협상이 아니다. 그건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말해주는 사랑의 대화다. 하나님도 그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이제는 때가 찼다.” 그리고 그 결정적 시점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회전목마에서 내려온 아이는 잠시 낯선 풍경에 당황할 수 있다. 그때 부모를 곧바로 찾을 수 있도록 손을 내미는 분,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십자가는, 인간이 시간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도록 손 내미신 하나님의 인도자요, 표지판이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갈라디아서 4:4)
십자가는 돌고 도는 인간의 시간 속으로 들어오신 하나님의 손짓이다.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는 하나님의 신호다.
📌 시간의 완성과 영원한 화합
회전목마가 멈추고, 아이도 내린다. 놀다 지친 아이는 어느새 조용히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간다. 돌고 도는 시간 속에서
아이에게 남은 건 단지 바퀴 수가 아니다. 그 안에서 본 엄마의 얼굴, 느낀 사랑, 배운 신뢰다.
십자가를 통해 주어진 구속, 그리고 장차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 천년왕국과 새 예루살렘은 회전이 끝난 뒤 손잡고 집으로 귀가하는 평안함의 완성이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린도후서 6:2)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니…” (요한계시록 21:3)
📌 마침내, 시간은 사랑이 된다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그 속에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흐르지 않으신다. 그분은 늘 그 자리에 계신다.
우리 인생의 회전목마는 멈추고, 하나님의 품 안에서 우리는 손을 꼭 잡고 귀가한다. 그때 비로소, 크로노스는 지나가고, 카이로스는 완성된다. 시간은 더 이상 흐르지 않고, 영원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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