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독교인들에게 '기도'는 익숙한 단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자신의 바람이나 필요를 말하는 ‘간구’를 기도라고 생각한다. 과연 기도는 그것만을 의미할까? 성경은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도보다 훨씬 넓고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기도, 간구, 도고는 같은 말일까?
성경에는 ‘기도’, ‘간구’, ‘도고’라는 표현이 함께 사용된다. 오늘날 대부분 ‘기도’라는 말로 통칭하지만, 성경에서는 이 세 가지가 명확히 구분된다. 히브리어 원어에서도 각 단어는 다른 의미와 뉘앙스를 지닌다.
- ‘기도’(תְּפִלָּה, 테필라)는 하나님께 예배하듯 드리는 고백이자, 하나님의 구속사역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바라는 경건한 아뢰임이다.
- ‘간구’(תְּחִנָּה, 테힌나)는 인간이 자신의 연약함과 필요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자비와 도움을 구하는 개인적인 요청이다.
- ‘도고’(פָּגַע, 파가)는 다른 사람의 필요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호소하는 중보적 기도를 뜻한다.
바울 사도는 이 세 가지를 골고루 강조했다. 에베소서 6장 18절에서 그는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라며, 다양한 기도의 형태가 필요함을 밝혔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도는 ‘간구’에 가까워
대부분의 신자들이 실천하고 있는 기도는 실은 ‘간구’다. 직장을 구하거나, 건강을 빌거나, 가정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성경도 분명히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마태복음 7:7)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문제는 기도가 ‘간구’에만 머무를 때다. 하나님께 무엇을 받기 위한 일방적인 청원으로만 이해한다면, 기도는 결국 편향된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기도’의 본질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을 보면, 기도의 중심에는 늘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뜻이 있다.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기도는 우리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속의 역사가 나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간절한 신앙의 표현이다.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 우리의 기도의 초점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맞춰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 또한 친히 채우시는 분이라는 약속이다. 따라서 진정한 ‘기도’는 인간의 욕구보다 더 높은 차원, 곧 하나님의 뜻과 나라를 바라는 중심을 가져야 한다.
이웃을 위한 기도, 곧 ‘도고’의 회복
도고는 다른 사람의 고통과 필요를 위해 하나님께 대신 아뢰는 기도다. 신약에서는 ‘중보기도’라 표현하기도 하며, 이는 철저히 이타적인 기도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2장 1절에서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고 명확히 말한다. 교회를 위한 기도, 나라를 위한 기도, 고통받는 이웃을 위한 기도는 곧 우리의 기도가 나를 벗어나 하나님 사랑의 통로로 확장되는 모습이다.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를 도우신다
기도는 인간이 하나님과 대화하는 방식이지만, 우리는 완전하지 않다. 무엇을, 어떻게 구해야 할지도 모를 때가 많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8장 26절에서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한다. 우리의 부족함을 성령께서 돕고 계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 머무를 수 있도록 인도하신다는 사실은 기도의 위로이자 소망이다.
기도의 편식은 기도의 능력을 제한한다
간구만이 기도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기도는 점차 자기 중심적인 ‘받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도, 이웃의 아픔을 향한 민감함도 기도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결국 기도는 응답되지 않고, 신앙은 메말라간다. 이것이 ‘기도의 편식’이 낳는 실제적인 문제다.
기도가 살아나려면 기도(하나님 나라), 간구(나의 삶), 도고(이웃의 아픔) 이 세 축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편식 없는 기도는 신앙의 균형을 이루는 건강한 영적 식단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생활의 모습이다.
맺음말
기도는 단순히 무릎을 꿇고 말하는 시간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이웃을 품으며, 나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내어놓는 전인격적 신앙 행위다. 개인적인 필요를 아뢰는 간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넓고 깊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고통받는 이웃을 위한 도고의 기도까지 나아갈 때, 우리는 기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경험하게 된다.
무엇보다 기도의 편식은 기도 자체의 능력을 제한하며, 결국 하나님을 제한된 분으로 오해하게 만든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온전하려면, 간구와 기도와 도고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런 기도 안에서만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삶 속에서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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