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족들을 데리고 미디안을 떠나 애굽에 도착하기 직전, 갑자기 이런 구절이 나온다.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를 놓아 주시니라 그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 때문이었더라(출 4장 24~26절)
이 구절은 상당히 생뚱맞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고, 바로 앞에 세우시기 바로 직전이다. 그런데 갑자기 모세를 죽이려 하셨다. 전후 설명도 없이 딱 세 절뿐이다. 이른바 ‘갑툭튀’ 장면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할례를 안 한 아들이 있구나”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심오한 섭리가 숨겨져 있다.
하나님은 왜 이 시점에서 모세를 죽이기까지 하시려 하셨을까. 그리고 십보라는 남편 모세를 “피 남편”이라 불렀을까. 무언가 아내 십보라의 원망과 불편함이 전해진다.
이 사건 후, 성경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모세가 아론을 만나러 가는 장면으로 넘어간다. 이른바 ‘갑툭튀’ 세 구절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미 알고 있었지만, 미뤄졌던 순종
할례는 아브라함 언약의 핵심 표징이다. 모세도 할례를 받은 뒤 나일강에 버려졌고, 이후 히브리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식하며 성장했다. 할례의 의미와 무게를 모를 리 없다.
문제는 미뤄진 순종이다. 모세에게는 게르솜과 엘리에셀, 두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본문은 단수로 “아들”이라고 말한다.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할례를 안 했음을 시사한다. 자연스러운 추정은, 장자인 게르솜은 할례를 했지만 둘째인 엘리에셀은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십보라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주목할 점은 십보라의 반응이다. 십보라는 죽음 직전의 모세를 본 순간, 이유를 묻지도 않고 돌칼을 들어 아들에게 할례를 행했다. 사건의 원인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은, 모세와 십보라가 바로를 만나러 가기 전에 할례를 받지 않은 아들에 대해 여러 차례 논의가 있었다는 점이다.
미디안 출신인 십보라에게 할례는 낯설고 불편한 풍습이었을 수 있다. “피 남편”이라는 말에는 정서적 반감이 짙게 묻어난다. 모세가 할례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말했지만, 십보라는 이를 불필요한 의식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있다.
첫째 아들 게르솜에게는 모세의 의지대로 할례를 행했지만, 그 과정을 지켜본 십보라는 미디안 사람들도 하지 않는 할례를 굳이 둘째 엘리에셀에게까지 하려고 하는 것에 강하게 반대했을 수 있다.
장자인 에서를 좋아했던 이삭과 둘째 야곱을 좋아했던 리브가 사례처럼, 모세는 장자인 게르솜에게, 십보라는 둘째인 엘리에셀에게 더 애정을 갖고 대했을 수 있다. 그래서 십보라는 둘째를 감싸며 의도적으로 할례를 미뤘고, 모세 역시 “이미 한 명은 했으니 충분하다”는 식으로 방치했을 가능성이 있다.
가정의 일치된 순종을 요구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모세를 멈추셨다. 죽음 직전까지 몰아가셨다. 그 순간 십보라는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이는 둘째의 할례 문제를 두고, 부부 사이에 이미 긴 논의와 갈등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모세는 아내의 반발 앞에서 적당히 넘기려 했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이 사건이 일어난 때는 애굽 입성, 즉 공적 사역이 시작되기 바로 전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바로 앞에 세우기 전에, 가정 안에서 무너진 순종을 먼저 다루셨다. 말씀을 전할 사람의 입술보다, 그 말씀이 살아 있어야 할 가정의 상태가 먼저였다. 부부가 같은 방향으로 서 있지 않다면, 사역은 언제든 균열 날 수 있다. 하나님은 이 점을 분명히 하신 듯하다.
이 사건 이후 십보라와 두 아들은 출애굽의 현장에서 물러난다. 아들에게 할례는 행했지만, 언약을 향한 마음의 동의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 결과 모세는 홀로 아론과 합류해 바로 앞에 섰고, 출애굽기 18장을 보면 십보라와 아들들은 장인의 집에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열 가지 재앙과 유월절 밤, 홍해를 건너는 하나님의 구원의 현장을 모세의 가족은 함께 경험하지 못했다.
놀라운 기적의 현장에서 배제된 모세 가족들
출애굽기 18장을 보면, 출애굽 이후 광야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된 뒤에야 이드로가 십보라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세를 찾아온다. 아말렉과의 전투가 끝났고, 공동체 질서가 정비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시간적으로는 출애굽 이후 수개월, 길게는 1년 안팎으로 추정된다.
마음의 순종이 어긋났던 모세의 가정은 결정적 사역의 현장을 건너뛰었고, 회복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 허락됐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의 사역은 가정에서 시작된다는 말은 선언이 아니라 결과다. 가정 안에서 순종이 부분적으로 타협될 때, 사역은 직선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출애굽기 4장의 ‘피 남편’ 사건에서 멈추게 하셨고, 출애굽기 18장에 이르러서야 다시 합류하게 하셨다. 이 생뚱맞아 보이는 세 구절은 갑툭튀가 아니다. 사역의 문 앞에서 드러난, 순종의 깊이를 묻는 하나님의 점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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