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마리아가 값비싼 나드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닦는 사건이 나온다(요한복음 12장, 마태복음 26장, 마가복음 14장). 당시 향유는 노동자 1년치 임금에 해당하는 값이었다. 오늘날로 환산하면 수천만 원에 이르는 엄청난 재산을 단번에 쏟아부은 셈이다.
가룟 유다가 “이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비난한 것도,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를 제지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내 장례를 준비한 것”이라 말씀하셨다.
죽음을 예고하신 예수님
마태복음 26장 12절에서 예수님은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고 하셨다. 마가복음 14장 8절에서도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계심을 드러내는 해석이었다.
그러나 실제 당시 유대 장례 문화에서 값비싼 향유를 온몸에 붓는 일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장례 준비”라는 말씀은 문자 그대로의 향유를 바르는 장례 절차가 아니라, 십자가 죽음을 앞둔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신 구속사적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예수님이 제지하지 않으신 이유
마리아는 오빠 나사로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무덤에서 살아난 것을 경험했다. 죽음에서 생명을 주신 분이 예수님임을 직접 본 것이다. 마리아가 향유옥합을 깬 것은 단순한 감사가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참 생명의 주이심을 고백한 행위였다.
가룟 유다의 반응은 경제적·사회적으로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의 행동을 막지 않으셨다. 그것이 낭비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귀한 분께 드린 신앙 고백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를 돕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신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행동 속에서 드러난 믿음, 곧 “당신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을 더 귀히 보셨다. 그래서 이 고백을 장례 준비라는 구속사적 맥락으로 연결하시며, 제자들에게 “이 여자의 행위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기억될 것”(마태복음 26:13)이라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만이 참으로 귀하다’는 고백
마리아의 옥합 사건은 단순한 장례 준비가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드러내는 표징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드린 가장 깊은 신앙 고백이었다. 예수님이 이를 제지하지 않으신 까닭은, 그 안에 복음의 본질 곧 구속자의 가치를 향한 전적인 헌신과 사랑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이 남는다. 나는 예수님을 세상에서 가장 귀한 분으로 고백하고 있는가? 나는 나의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릴 수 있는가?
마리아의 옥합은 결국 예수님의 장례와 부활, 그리고 그분이 구속자이심을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것이라 해도 주님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참으로 귀하시다. 이것이 옥합 사건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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