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과 요셉...화려함에 가려진 고독과 결핍의 여정
다니엘과 요셉은 이방 민족의 총리 자리까지 오른 믿음의 인물이다. 그래서 많은 교인들이 이들을 닮고 싶어 하고, 자녀가 이들처럼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다니엘’, ‘요셉’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의 ‘결과’에만 집중하고, 그 이면에 감춰진 외로움과 결핍, 상처의 시간은 종종 외면한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신앙은 위기에 취약하다. 이제 다니엘과 요셉의 인간적인 삶을 돌아보며, 세상의 복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집중된 삶을 함께 묵상해 보자.
📖 다니엘 – 포로, 환관, 가족 없는 인생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왕궁에서 특별 교육을 받으며 ‘왕 앞에 설 자’로 선발되었다(단 1:3~4). 당시 바벨론 제국은 왕의 측근이 될 자들을 환관, 즉 거세된 내시로 만드는 관행이 있었다. 다니엘서에는 아내나 자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이는 그가 실제로 환관이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정황이다.
유대교 전통 문헌인 탈무드도 다니엘과 세 친구가 환관으로 봉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성서학자 John J. Collins도 그의 주석서에서 “다니엘은 육체적, 사회적 결핍을 지닌 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고립된 예언자”라고 설명한다.
다니엘서 후반부(단 10장)에서는 그가 환상을 보던 중 “홀로 있었다”고 반복 고백한다. 세상적으로는 총리였지만, 영적으로는 철저히 외로운 인생이었다. 기도가 유일한 대화였고, 하나님이 유일한 벗이었다.
📖 요셉 – 청춘을 잃은 총리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17세에 애굽에 팔려 노예가 되었다. 이후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갇히며, 청춘의 대부분을 타인의 통제 속에서 보냈다.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지만, 그 여정은 눈물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요셉이 17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치더니…”
(창세기 37장 2절)
“요셉이 바로 앞에 설 때 삼십 세라.”
(창세기 41장 46절)
이 말씀을 통해, 요셉이 약 13년간 노예와 죄수의 신분으로 이방 땅에서 지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젊은 시절 대부분은 자유도 가족도 없이, 억울함과 고립 속에서 흘러갔다. 성경에는 그가 형제들과 재회할 때 감정을 억누르다 오열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창세기에서 ‘운다’는 동사가 가장 자주 쓰인 인물이 요셉이다.
『요셉과 아셀낫(Joseph and Aseneth)』이라는 외경은 요셉과 그의 아내가 된 이방 여인 아셀낫의 만남과 회심 과정을 다룬 문헌이다. 기원전 2~1세기경 유대-헬레니즘 세계에서 쓰였으며, 요셉을 경건하고 금욕적인 사명자로 묘사한다.
그는 세속 권력을 위해 산 것이 아니라, 고독한 이방 땅에서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룬 자였다. 또한 유대교 주석서 『미드라쉬 라바(Midrash Rabbah)』 중 『베레쉬트 라바(Genesis Rabbah)』는 요셉이 수십 년간 매일 밤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울었다고 전한다. 이는 성경 본문이 전하지 못한 요셉의 정서적 외로움과 영적 시련을 당시 유대인들이 얼마나 깊이 공감했는지를 보여주는 전통적 주석이다.
📖 인간적으로는 결핍된 인생
우리는 이들의 ‘결과’만을 부러워하지만, 하나님은 과정 속에서 그들을 빚으셨다. 다니엘은 기도 외엔 붙잡을 것이 없던 사람이었다. 요셉은 하나님 외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았다. 결혼도 없고, 자식도 없고, 명예도 잠시뿐.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긴 결과, 이들은 성경에 기록된 위대한 인물이 된 것이다.
- 다니엘에게 있어 환관이라는 신체적 결핍과 민족의 멸망은 하나님 앞에 더욱 무릎 꿇게 만드는 도구였다.
- 요셉에게 있어 가정의 단절, 감옥의 억울함, 청춘의 상실은 하나님의 음성을 깊이 듣게 만드는 통로였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흔히 바라는 ‘가정의 기쁨’, ‘인간관계의 안정’, ‘여가의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 자리를 하나님께서 채우셨다.
📖 다니엘, 요셉처럼 성공하라?
“다니엘처럼 되라.” “요셉처럼 성공하라.” 우리가 쉽게 내뱉는 이 말들 앞에, 그들의 결핍과 고독, 포기와 인내를 함께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그들을 닮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혹시 지금, 가족의 부재와 관계의 아픔, 억울한 현실 속에 있다면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당신을 다니엘로, 요셉으로 빚고 계신지도 모른다. 결핍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주님, 저의 부족함이 오히려 주님을 더 깊이 찾게 하소서. 세상의 즐거움이 사라질지라도, 다니엘처럼, 요셉처럼, 주님만 붙드는 자가 되게 하소서.”